“한반도에는 왜 큰 지진이 드물까?”라는 질문은 지진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동시에 지리적·지질학적 특성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주변 국가들이 큰 지진을 겪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상대적 안정성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1. 판의 경계에서 떨어진 위치, 한반도의 지질학적 배경
지진이 발생하는 주요 무대는 대체로 판과 판이 만나는 경계 지역이다. 태평양, 인도-호주, 유라시아, 북미판 등 거대한 판들이 충돌하거나 벌어지고 미끄러지는 과정에서 막대한 응력이 축적되고 이것이 한순간에 해소되며 큰 지진이 발생한다. 일본은 태평양판과 필리핀판이 유라시아판, 북미판과 복잡하게 맞물린 판의 교차로에 위치해 있어 대지진의 위험이 상존한다. 반면, 한반도는 판의 직접적인 경계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리적 위치가 중요한 이유는 판의 충돌이나 섭입이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응력이 한반도에 직접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판 내부에서도 응력이 쌓이고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판내 지진이라고 하는데 한반도에서 관측되는 대부분의 지진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판 내부에서 발생하는 응력은 경계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지진의 규모도 대체로 작게 나타난다.
한반도의 지각은 비교적 오래되고 안정적인 지질대를 이루고 있다. 고생대와 중생대 동안 형성된 변성암과 화강암 지대가 광범위하게 분포하면서 판 경계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지각 변형과는 거리가 있다. 즉, 한반도의 지질학적 안정성은 큰 지진이 드문 중요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2. 단층의 특성과 지진 에너지의 한계
큰 지진이 발생하려면 지각 속 단층대가 길고 깊게 발달해 있어야 한다. 일본의 난카이 해구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안드레아스 단층은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그만큼 많은 응력을 축적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단층들은 이와 비교했을 때 규모가 훨씬 작고 불연속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경주, 울산, 양산 일대에 발달한 양산단층은 한반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활성 단층이다. 실제로 2016년 경주 지진(규모 5.8)과 2017년 포항 지진(규모 5.4)은 이 단층대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단층대조차 일본의 해구형 단층대처럼 막대한 응력을 축적할 정도로 길거나 깊지 않다.
또한 한반도의 단층대는 지질학적으로 오래되어 이미 여러 차례 움직임을 겪었다. 이러한 노후화된 단층대는 응력을 흡수하거나 분산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 결과, 축적되는 에너지의 총량이 제한적이어서 대규모 지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물론, 작은 단층이라도 갑작스럽게 미끄러질 경우 지역적으로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에서 발생하는 규모 5 이상의 지진은 건물 피해와 사회적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단층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규모 7 이상에 해당하는 초대형 지진은 한반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3. 주변 지역과의 비교, 그리고 드물지만 존재하는 위험
한반도의 지진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변 지역과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은 태평양판과 필리핀판이 섭입하면서 매년 수천 건의 지진이 발생하고 규모 7 이상 대지진도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중국 또한 시안, 쓰촨 지역처럼 내륙 대지진이 발생하는 곳이 있으며 특히 2008년 쓰촨 대지진(규모 7.9)은 판 내부에서 발생했음에도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이에 비해 한반도의 지진은 규모와 빈도 모두 상대적으로 낮다. 기상청의 기록을 보면 한반도에서 관측된 지진 대부분은 규모 3 이하의 미소 지진이다. 규모 5 이상의 지진은 역사적으로 수십 건에 불과하며 대규모 피해를 남긴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드물다는 것이 없다와 같지는 않다. 역사 기록을 보면 779년 경주 지진, 1643년 강원도 지진 등은 당시 큰 피해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또한, 판내 지진은 예측이 어렵고 한 번 발생하면 국지적으로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2016년 경주 지진은 그 자체로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지진에 대비하지 않은 건축물과 사회적 준비 부족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남겼다.
따라서 한반도는 큰 지진이 드문 지역임과 동시에 예기치 못한 위험이 존재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지질학적 배경 덕분에 초대형 지진은 거의 없지만 중규모 지진이 인구와 산업이 밀집된 지역에서 발생할 경우 피해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결국, 드문 지진의 특성은 우리의 안일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지진의 불확실성 자체가 늘 대비의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